서 론
조기 암 발견의 증가, 암 치료 성적의 향상 등으로 암을 겪은 후 생존한 사람을 지칭하는 암생존자의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전국 단위 암 발생 통계를 산출하기 시작한 1999년부터 2011년까지 집계된 암생존자는 100만명을 넘어서(Fig. 1), 전체 인구 45명당 1명이 암 치료를 받고 있거나, 암 치료 후 생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 암생존자의 수와 생존기간이 증가하면서 이들의 후기합병증, 암 이외 만성질환 관리, 이차암 예방 등이 새로운 건강 문제로 대두되어, 이에 대한 의료인의 관심 및 의료 정책의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본고에서는 암생존자의 개념 및 건강문제를 살펴보고 이에 대한 임상적, 정책적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본 론
암생존자 정의
암생존자의 개념은 역사적으로 암 치료 후 재발이나 전이의 증거 없이 5년 이상 생존한 상태를 의미하였으나, 1986년 미국 National Coalition for Cancer Survivorship (NCCS)는 이에 반하여, 암 진단 직후부터 암생존자로 정의하여 암생존자의 새로운 개념을 제안했다. 이는 암 진단 이후 생존율과 생존 기간의 증가에 따른 변화를 반영한 것으로, 이전과는 달리 암 진단 직후부터 의료진과 환자가 장기적인 경과와 이에 따른 의료비 등을 논의해야 하며, 암 진단 이후 시기에 따라 환자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달라지기 때문이다[2]. NCCS는 또한 넓은 범위의 암생존자의 개념에 암환자의 보호자 역시 포함시켜, 암 진단과 이후의 장기경과에 있어 보호자 역시 의료진의 관심을 필요로 함을 일깨웠다. 이후 1996년 미국 국립 암 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는 암 생존자 관리 사무소(Office of Cancer survivorship)를 설립하였고, 미국 임상 종양 협회(American Society of Clinical Oncology)는 2006년 연간 의제로 ‘환자와 생존자 관리’를 포함시키는 등, 암 생존자는 매우 빠른 속도로 학계의 중요 분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암생존자의 개념 및 표현에 있어 여전히 혼란이 있으며, 국내에서도 아직 공식적인 정의가 없는 상황이다. 정책적으로는 암진단 이후 생존해 있는 모든 사람들로 정의하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말기 환자는 제외하고 있으며, ‘암생존자’ 라는 표현에 있어서도 ‘암유병자’, ‘암경험자’, ’암극복자’ 등 다양한 제안이 있어왔다[3]. 현재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는 용어는 ‘암생존자’이며, 본고에서는 이를 사용하였다.
암생존자의 건강관리
암 생존자는 원발암의 재발 및 합병증 관리뿐 아니라, 이차암 예방 및 검진, 암 이외 동반질환 관리, 생활습관 관리 등이 필요하며, 또한 암 진단 이후 우울, 불안 등의 심리사회적 문제를 자주 겪는다. 암생존자의 포괄적 건강관리가 암생존자의 삶의 질 뿐 아니라 사망률, 이환율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이를 위한 의료진의 관심과 제도적 접근이 시급하다.
이차암 예방과 검진
이차암은 암병력이 있는 사람에게서 암 치료 이후 이전에 겪은 암과 무관하게 새롭게 발생한 암을 의미하며, 전이나 재발과 구분되는 개념이다. 암을 겪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성향, 환경 요인 및 이전 암 치료의 영향 등으로 암을 겪지 않은 사람에 비해 암생존자는 새로운 암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져, 미국 등의 연구로 보아 1.1–1.6배 가량 더 높은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이차암에 관련된 공식 통계가 부족한 상태이다. 이차암은 암생존자의 사망률을 높일 수 있으며, 특히 일차암이 예후가 좋은 암일 경우 이차암이 사망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암생존자에게 이차암 검진은 중요하며, 적어도 일반 인구집단에 권고되는 수준의 암검진이 필요하고, 일차암의 종류나 흡연, 비만 등의 환자 별 위험요인 등을 고려한 맞춤형 검진이 권고된다. 그러나 국내 연구에서 암생존자 중 37.7% 정도만이 이차암 검진을 적합한 수준으로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4], 이차암 검진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과 제도적 뒷받침이 촉구된다.
동반질환 관리
암은 일반적으로 고령에서 발생하므로 암생존자는 다른 만성질환을 동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유방암 항암치료 후의 심장 손상, 전립선암 남성호르몬 억제 요법 후의 심혈관질환 및 골다공증 위험 등 암 치료가 다른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이기도 한다. 그 결과 암생존자는 일반인구집단보다 동반질환을 가질 가능성이 더 높다[5]. 그러나 이전 연구에서 암생존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만성질환 등 암 이외 건강문제에 대해 도리어 소홀해진다고 나타났으며, 이는 암을 진단 받음으로써 암 이외 다른 건강문제에 대해 관심이 소홀해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6]. 암 치료 성적의 향상에 따라 암 이외의 동반질환이 도리어 사망의 원인이 될 가능성이 커져, 암생존자 동반질환의 지속적 관리가 중요 시 된다.
생활습관 관리
흡연, 영양, 운동 등의 생활습관은 암 발생의 위험요인일 뿐 아니라, 암생존자에 있어 암 치료의 경과, 이차암의 발생 등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암 진단 이후에도 기존의 생활습관을 바꾸기란 쉽지 않으며 이에 대한 의료진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암 진단 후 흡연을 지속하는 경우 방사선 치료 등의 항암치료 효과가 감소하고, 수술 후 폐부종 등의 합병증이 증가한다. 지속적 흡연은 이차암의 발생 및 심혈관계 등 동반질환의 발생 위험도 높인다. 그러나 암 진단 후에도 1/4 이상의 환자가 흡연을 지속하며[7], 이는 암생존자의 죄책감, 가족과의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흡연 외에도 암생존자의 비만 및 체중 증가는 원발암의 재발, 이차암의 발생 및 만성질환의 위험을 높일 수 있다. 특히 비만과 유방암, 대장암, 전립선 암 등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많은 연구들이 있으며, 적절한 영양과 운동을 통한 예방이 필요하다. 그러나 암생존자 중에는 과도한 식이조절로 영양 불균형에 이르는 경우가 있으며, 암생존자의 운동 시 시작 전 적절한 위험요인 평가가 필요하여, 암생존자의 생활습관 관리에 있어 의료진의 도움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암 진단 및 치료가 환자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계기가 될 수 있어, 이를 이용한 의료진의 개입이 효과적일 것이다.
심리사회적 문제
암 진단은 누구에게나 정신적 고통이 된다. 암 진단 이후 많은 환자들이 당혹감, 슬픔, 두려움부터 우울, 불안, 공황 등 병적 상태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스트레스를 보인다. 이러한 암환자의 정신적 고통을 그 원인과 정도에 관계없이 ‘디스트레스’라고 통칭한다. ‘스트레스’ 라고 하지 않고 ‘디스트레스’ 라는 용어로 구분하는 이유는, 암환자의 고통을 단순한 일상적 스트레스로 과소평가하지 않으면서 ‘정신과적’ 등의 용어를 배제해, 비교적 중립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이다[8]. 암환자 디스트레스는 자살률의 증가로 이어져, 암환자의 자살률은 일반인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9]. 그러나 의료인들이 일상 진료 중에 이러한 문제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10], 적극적 선별검사를 통해 적절한 서비스로 연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암생존자들은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직업을 유지하거나 재취업하는 데 장애를 겪어, 약 절반 정도는 일을 그만두게 되고 이들 중 약 30% 정도만이 직업을 다시 가지게 된다[11]. 암생존자들이 지속적으로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대중적 인식변화가 필요하다.
공동진료모형
암생존자의 지속적 케어를 위해 미국 등지에서 여러 모형들이 제시되었고[13], 이 중 가장 효과적으로 인식되는 모형이 공동진료모형(shared care model)이다(Fig. 2). 공동진료모형이란 암 진단 직후부터 암전문의와 일차 진료의가 서로 환자의 케어를 공유하여 보완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시기별 요구에 맞게 암 치료 중에는 암전문의가, 암 치료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차 진료의가 더 많이 개입하게 되는 모형이다. 이전 연구에서 암전문의와 일차 진료의가 함께 케어하였을 때, 암전문의만 케어하였을 때보다 암생존자가 이차암 검진이나 예방접종 등의 예방서비스를 적절하게 받을 가능성이 더 높음을 볼 수 있었다[6].
공동진료모형 역시 극복해야 할 어려움들이 있는데, 암생존자들은 일차 진료의가 암 환자의 케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에 의문을 보이는 경우가 있었고, 일차 진료의와 암전문의 간에 의사소통이 잘 될지를 우려했다[14].
국내에서는 환자들의 정서나 여건을 고려했을 때, 기관 내 공동진료모형(Institution-based shared care model)이 제시되고 있으며[12],이는 의료정보의 공유 및 일차 진료의와 암전문의 간 의사소통이 쉽다는 점, 환자들이 암 치료를 받은 병원에서 장기 케어를 이어가는 것을 편안해 하는 점 등이 강점으로 여겨진다. 이를 반영하여 국내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암건강증진센터를 비롯하여,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등 몇 개 기관에서 암생존자 진료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들어 서울대병원에서는 암 치료 후 4-5년이 지난 위암, 유방암 등의 환자들 중 상당수가 암건강증진센터로 의뢰되며, 가정의학과 전문의들이 암 치료 후 추적관찰을 포함하여 이차암 검진, 만성질환관리, 생활습관 안내, 예방접종 등의 포괄적인 진료를 하고 있다. 위암센터에서 의뢰된 환자들의 분석 결과, 위 수술 후 골다공증, 예방접종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unpublished data). 현재까지는 기관 내 공동진료모형이 몇몇 병원에 의한 시도 단계로서 널리 정착되지는 못하였으나, 국내 여건에서 암생존자 관리를 위한 효과적이고 적합한 방안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 사업본부에서는 ‘암환자를 위한 통합지지 프로그램의 개발’을 추진하고 있으며[15], 이는 공동진료모형에 더하여 정신종양학, 재활의학, 통증의학, 영양관리, 사회복지 등의 전문 서비스를 포함한다. 이에 기초하여 보건복지부에서는 12개 이상 지역에 암생존자 통합지지센터를 설치하여, 2020년까지 10% 이상의 암생존자들이 이를 이용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